초등학교 저학년 도덕책에나 나올듯 한 내용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왜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만 잘 지키고 살아가도 참 잘 살았다 이야기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부산 동구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입니다..."
국무위원 여러분, 저는 별로 성실한 답변을 요구 한합니다.
성실한 답변을 요구해도 비슷하니까요.
청년학생들이 죽어가는 것은 감옥에 가서 참회해야 될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온갖 도둑질을 다 해 먹으면서 바른 말 하는 사람 데려다가 고문하고 죽이는 바람에 생긴일이니까,
그사람들이 임명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에게 무슨 대책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물으면 제가 그르지요."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 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다 함께 잘살게 되고 임금의 격차가 줄어져서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는다 할 지라도 그리고 높은자리에 안 올라가도 사람대접 받을수 있는 세상이 되면....그런세상이 와도 지금처럼.....
한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워하고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면 얼마나 이 사회가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보잘 것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 내 자식에게는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야 할까요.
YTN의 돌발영상을 보고 http://www.ytn.co.kr/_comm/pop_mov.php?page=1&s_mcd=0302&s_hcd=01&key=200905281406147756
- 첫째 도(道) - 지금의 장사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 둘째 천시(天時) - 과연 장사를 할 시기인가
- 셋째 지리(地利) - 구체적 시장조사는 했는가
- 넷째 장(將) - 나는 짭짭한 장사꾼인가
- 다섯째 법(法) - 조직과 자금은 있는가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마음을 울리는 음악을 들었을 때, 입안 가득 그 맛이 가득한 음식을 먹었을 때 삶이 즐겁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을 본다. 개인적으로 너무 부럽고 그 노력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다음에서 연재되고 있는 윤태호의 이끼를 보고 있으면 고등학생 시절에 시험이 끝나고 만화방에서 보던 만화가 아니 전혀 새로운 만화를 보는 것 같다. 웹과 만화의 만남이 이렇게 재 탄생이 되는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느 카페에 윤태호씨에 대한 게시글 중에서
윤씨가 고등학교 1학년 되던 해...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온 가족이 광주의 쪽방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림에 재능이 많았던 윤씨는 미대에 들어가고 싶어.. 학교 선배들 화방에서 청소를 해주며 미술 공부를 했죠. 하지만 비싼 등록금을 해결할 수가 없던 그는 결국 대학을 포기해야했어요. 그래도 윤씨는 실망하지 않았죠. 만화가가 되겠다며 만화학원 광고지 하나를 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했어요.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는 정말로 피나는 노력과 끊임 없는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낌이다. 오천원 짜리 해장국 한 그룻에 감동을 받듯이 어찌하면 내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아니 반성하게 합니다.
학원엔 들어갔지만, 가난했던 그에겐 부담이 컸죠. 그의 한달 생활비는 15만원이었는데, 학원비 8만원을 내면, 120원짜리 라면으로 하루 세끼 해결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그는 학원 근처 아파트 벤치서 노숙생활을 해야 했어요.당시 윤씨가 제일 미웠던 사람은 밤잠 없는 노인들이었다고 해요. 특히 여름 밤, 나와서 이야길 나누는 노인들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또 가장 고마웠던 분도 이분들이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먹을 것도 사주며 격려해주기도 했거든요.
9개월 학원 과정을 끝낸 뒤... 윤씨는 가난한 문하생 생활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윤씨는 자신만의 작품을 그리기 위해, 하루 2,3시간 밖에 못 자는 지독한 연습벌레로 살았죠. 그렇게 93년 내놓은 첫 작품 ‘비상착륙’은,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뒤 윤씨는 좋은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소설과 영화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그리고... 98년 12월, 장편현대극 ‘야후’를 통해 10년만에 성공을 거두는가 했지만...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어요. 2000년대 초반 만화계 불황과 슬럼프로 3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접어야 했거든요.
왜 이렇게 풀리지 않을까, 고민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어요. 동료 작가인 강풀과 강도하의 권유로 2006년, 웹툰을 시작하게 된거죠. 20년 가까이 원고지생활을 해온 만화가인 그에게 웹툰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여러 컴퓨터 만화기법을 배웠구요, 그렇게 내놓은 만화 ‘이끼’로, 그는 오늘날의 스타 만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만화가 윤태호씨는 지난 20년간의 고난을 견뎌낸 노력을 내세우지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보다 재능있는 만화가는 많습니다, 단지 제 곁엔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에요. 훌륭한 스승이 있었고, 자존심을 지켜주는 친구들이 있었고요. 그들로 인해 지지리도 운 없던 제가 운좋은 사나이가 된거라고 생각해요.”
PHP에서는 MSSQL서버에서 varchar타입 크기를 256이상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때 아래와 같이 convert 함수를 이용하여 text 형식으로 변환해 주면 됩니다.
select convert(text,s.Story) as Story from cmplayer.StoryMain s
text 형식의 경우 php.ini 에서 mssql.textlimit 와 mssql.textsize 값을 수정해 주어야 합니다.
[ms sql]
; Valid range 0-2147483647 . Default=4096
; mssql.textlimit = 4096
; Valid range 0-2147483647 . Default=4096
; mssql.textsize = 4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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